문화재 >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본문
부여 정림사터에 세워져 있는 석탑으로, 좁고 낮은 1단의 기단(基壇)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다. 신라와의 연합군으로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한 기념탑’이라는 뜻의 글귀를 이 탑에 남겨놓아, 한때는 ‘평제탑’이라고 잘못 불리어지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다.
기단은 각 면의 가운데와 모서리에 기둥돌을 끼워 놓았고, 탑신부의 각 층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을 세워놓았는데, 하부로부터 상부로 가면서 점차 폭을 줄이는 민흘림기법을 사용하였다. 얇고 넓은 지붕돌은 처마의 네 귀퉁이에서 부드럽게 들려져 단아한 자태를 보여준다.
좁고 얕은 1단의 기단과 민흘림기법의 기둥표현, 얇고 넓은 지붕돌의 형태 등은 목조건물의 형식을 충실히 이행하면서도 단순한 모방이 아닌 세련되고 창의적인 조형을 보여주며, 전체의 형태가 매우 장중하고 아름답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과 함께 2기만 남아있는 백제시대의 석탑이라는 점에서도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며, 세련되고 정제된 조형미를 통해 격조높은 기품을 풍기고 있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기단은 각 면의 가운데와 모서리에 기둥돌을 끼워 놓았고, 탑신부의 각 층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을 세워놓았는데, 하부로부터 상부로 가면서 점차 폭을 줄이는 민흘림기법을 사용하였다. 얇고 넓은 지붕돌은 처마의 네 귀퉁이에서 부드럽게 들려져 단아한 자태를 보여준다.
좁고 얕은 1단의 기단과 민흘림기법의 기둥표현, 얇고 넓은 지붕돌의 형태 등은 목조건물의 형식을 충실히 이행하면서도 단순한 모방이 아닌 세련되고 창의적인 조형을 보여주며, 전체의 형태가 매우 장중하고 아름답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과 함께 2기만 남아있는 백제시대의 석탑이라는 점에서도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며, 세련되고 정제된 조형미를 통해 격조높은 기품을 풍기고 있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기본 정보
문화재유형 | 국보 |
---|---|
지정호수 | 9 |
문화재명 |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
문화재명2 | 扶餘 定林寺址 五層石塔 |
문화재분류 | 유적건조물 |
문화재분류2 | 종교신앙 |
문화재분류3 | 불교 |
문화재분류4 | 탑 |
수량 | 1기 |
지정(등록일) | 19621220 |
소재지 상세 | 충청남도 부여군 정림로 83 (부여읍, 정림사지) 정림사지박물관 |
시대 | 백제시대 후기 7세기 |
소유자 | 국유 |
관리자 | 부여군 |
관련 이미지 정보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기단부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전경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초층탑신 명문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우측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정면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근접사진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부여정림사지오층석탑 측면
좌측에서 바라본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옥개석구성)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_기단부 (촬영년도 : 2015년)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_우측면 (촬영년도 : 2015년)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_정면 (촬영년도 : 2015년)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_좌측면 (촬영년도 : 2015년)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_전경1 (촬영년도 : 2015년)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_전경2 (촬영년도 : 2015년)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_전경 (촬영년도 : 2015년)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_탑신과 기단부 (촬영년도 : 2015년)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_하대석 (촬영년도 : 2015년)
연구-041757_02_정림사지 오층석탑_건축(출처 : 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041757_03_정림사지 오층석탑_건축(출처 : 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041757_04_정림사지 오층석탑_건축(출처 : 국립문화재연구소)
컨텐츠 저작권
문화재청 및 공공데이터포털의 Open API 서비스를 통해서 구현되었습니다.